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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1부 2장 : 뿌리 깊은 나무 | 임병욱 목사 | 2024-1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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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디모데전서4:7-8절 개역개정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기독교강요는 중세 카톨릭교회의 타락으로부터 성경과 교회를 지켜낸 종교개혁의 완성자라 부를 수 있는 존 칼빈이 쓴 성경 해설서입니다. 칼빈(John Calvin)은 1509년 7월 10일에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2살에 성직록을 받고 신부 수업을 받으며 성직자의 길을 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14살에 파리대학에 입학하여 24살에 법률학 박사 학위를 받지요. 그리곤 그 해 11월 프랑스 왕비의 동생인 니콜라스 콥이 파리대학교의 총장에 취임할 때 그 취임사를 써 줍니다. 그때가 카톨릭계 학교인 소르본 대학이 왕과 왕비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때인데, 칼빈은 총장 취임사에서 카톨릭의 전통을 지키려 왕과 왕비를 이단으로 정죄한 소르본 대학의 교수들을 맹비난했습니다. 이 때문에 칼빈은 카톨릭 교회의 미움을 받아 파리를 떠나 스위스 바젤로 도피합니다. 이때가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때였습니다. 결국 칼빈도 이 일을 계기로 로마 교황청을 비난하는 대열에 서게 되는데, 바젤에서 그는 교부들을 연구하였고, 1536년에는 기독교강요 초판을 발행합니다. 루터의 소요리문답처럼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세례와 성찬, 그리고 천주교의 다섯 성례라고 하는 것들, 그리고 성도의 자유과 교회, 징계등을 간단히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크게 떠난 로마교황청의 오류를 성경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천주교의 우두머리들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총 6장으로 되어 있는 이 얇은 책이 금방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그리곤 뜻하지 않게 칼빈은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선두에 서게 됩니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였습니다. 조숙한 천재이지요. 이렇게 출판된 기독교강요는 출판을 거듭하면서 4부 80장의 거대한 책으로 완성되어 성경에서 떠나 있던 로마교황청의 교리를 허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강요는 성경을 바르게 보는 안경이요, 성경의 진리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틀, 곧 교리였던 것입니다. 기독교강요 제1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제 묵상한대로 1장에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알아야 하고, 나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의 관계를 배웠습니다. 그것을 ‘거울의 신비’라고 제목을 붙였지요. 오늘은 2장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 지식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이 우리 자신에게 말할 수 없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로 세가지 결과를 누리게 합니다.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주는 열매이지요. 원래 하나님은 창조주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온 우주 만물과 우리 인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을 밝히 드러내 보이셨지요. 하지만 죄 때문에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아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구속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또한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죄에 종 노릇하던 인간은 이 땅에 구원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주요,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것, 그것이 ‘참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참 종교’는 앞에서 말한 세가지 ‘참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 종교를 통해 신앙의 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경건의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뒤, 학자들에게 한글의 유용성을 알리는 글을 쓰라고 하지요. 그때 학자들이 만들어낸 글이 용비어천가입니다. 그 용비어천가의 첫 2장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풀이를 하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니”라는 뜻이지요. 나무가 꽃이 좋고 열매도 많기 위해서는 뿌리가 깊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도 신앙의 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경건의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화분에 심겨진 나무와 수많은 풍상을 견뎌낸 나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납니다. 화분에 심긴 꽃은 힘을 안 줘도 금방 뽑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있어도 실 보다 조금 더 두껍고 아주 짧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무는 햇볕에 같다 놓으면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뿌리가 얕아서 햇볕을 감당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랜시간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는 그 어떤 풍파에도 견디며 꽃을 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람도 꼭 나무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비슷하게 보입니다. 10살 20살 40살, 그저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보면 어떤 사람은 용문산의 은행나무 같습니다. 가지가 사방으로 쭉쭉 뻗어 있고, 빽빽히 달려 있는 잎파리 하나가 사람 얼굴 만하고, 거기서 맺는 열매들은 커다란 호박 만합니다. 뿌리가 깊은 덕이지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화분에 심긴 화초 같고, 길가에 심긴 싸리나무 같습니다. 뿌리가 얕아서 나무가 회초리처럼 마르고 잎사귀도 없고, 줄기도 없고, 위태롭게 겨우 버티고 서 있습니다. 거기에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그대로 콰당 넘어지고, 비라도 퍼 부으면 쑥 뽑힙니다. 햇볕이라도 며칠 쨍 하면 그대로 말라 죽습니다. 금방 신앙을 잃고 방황하거나 신앙에서 떠나는 것이지요. 이렇게 어떤 풍파와 시련에도 굳건히 서서 풍성한 열매는 맺는 그리스도인을 성경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딤후3:12)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참 경건이 없는 곳에는 참 종교도 없고, 참 종교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도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 경건은 참 종교를 낳고 참 종교는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을 낳는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경건이야말로 생명과도 같은 것이란 말이지요. 그래서 오른 묵상한 성경 말씀에서“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지요.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의 뿌리와도 같다는 말입니다. 뿌리가 튼튼하고 깊어야 나무도 크고 열매도 풍성한 법이지요. 그러면 경건이란 무엇 것일까요? 간단히 표현하자면, 경건은 ‘사랑에서 나온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인데 ‘사랑’에서 나온 두려움이란 말이지요. 마귀 사탄도 하나님을 압니다. 그러나 마귀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은 마귀로 하여금 ‘두려워 떨게’(약2:19)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이 우리 성도들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롬5:5).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무서워 하는 영’을 받지만 우리 성도들은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롬8:15). 그러니까 ‘양자의 영’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건이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까지도 기꺼이 받아 들이며,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 주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 하고 두려워 하는 순수한 열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건이 있을 때 우리는 참다운 종교 생활을 할 수가 있고, 또 그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매를 풍성히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있어서 종교의 뿌리, 신앙의 뿌리는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사랑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율법의 최고봉이 무엇입니까?’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마태복음22:37-38)“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인간의 종교의 뿌리, 신앙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육체를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보다 게임을 더 사랑합니다. 이웃보다 돈을 더 사랑합니다. 이웃보다 술을 더 사랑하고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이나 이웃보다 권력을 더 사랑합니다. 이런 인생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뿌리없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뿌리 없는 인생이니 절대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버티다가 죽음이란 심판의 홍수가 덮칠 때 뽑혀서 지옥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건한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경건하면 할수록 뿌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큰 나무입니다. 반드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열매를 맺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목하십시오. 사람을 고르려면 경건한가 아닌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친구를 고르고 싶으면 경건을 보세요. 애인을 고르고 싶으면 경건을 보세요. 일꾼을 고르려면 경건을 보세요. 나무는 뿌리를 보면 알듯, 경건이 그 사람의 뿌리입니다. 이처럼 경건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죽어도 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죽어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잘 알아가게 됩니다. 사람도 더 잘 알게 됩니다. 철이 드는 것이지요. 철을 알아야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듯이, 사람도 그렇게 철이 들어야 때에 맞는 열매를 맺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점점 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이 싫어 하시는 것,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하나님이 내게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 자꾸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박사가 됩니다. 또한 경건하면 할수록 사람들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잘 도울 수가 있고, 행복하게 해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모르면 사람을 잡습니다. 히틀러 보세요. 위대하게 커 보였지만, 그는 경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았고 사람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죄를 짓고, 수많은 사람을 잡았습니다. 죽였습니다. 그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종교 생활, 신앙생활은 곧 경건한 삶이요, 그 경건한 삶의 뿌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종교생활 한다? 그것은 위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경건의 뿌리입니다.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크고 좋은 나무가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뿌리를 돌봐야 합니다. 벌레먹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산소가 통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딤전 4:7,8)“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경건을 연습하라.’그렇습니다. 뿌리를 돌보는 것처럼 자기의 경건을 돌보는 자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큰 나무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연습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처럼 경건을 연습한 사람이 승리자가 되고,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또 천국에서도 영생의 기쁨과 복을 누린다는 약속입니다. 한마디로 살아서도 복을 받고 죽어서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경건을 연습하십시오. 맨날 게임만 하고, 티브이만 보고, 놀러 다니고, 잠만 자고, 돈만 벌지 말고 여러분의 경건을 연습하십시오. 경건이 바로 여러분 인생의 뿌리입니다. 뿌리가 마르지 않게 벌레 먹지 않게 뿌리를 돌보십시오. 경건을 연습하는 몇 가지만 가르쳐 드립니다. 이 몇 가지를 매일 연습하십시오. 첫째, 매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내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내 친구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내 삶에 얽히고 설켜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경건한 삶의 첫 걸음입니다. 둘째, 성경을 묵상하십시오. 경건의 뿌리는 성경이란 밥을 먹고 자랍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읽으십시오. 읽다가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암송도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능력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사건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빛이 있어라 하니 빛이 생겼고, 궁창이 있어라 하니 궁창이 창조되었습니다.’그래서 말씀은 능력이요 사건입니다. 히브리서 4:12은 말합니다.(히4:12)“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치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고치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인생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생활, 신앙생활의 근간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셋째, 찬양과 예배를 즐기십시오. 어쩌다 시간나면 예배드리고, 시간나면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일주일 중 최고의 시간이 예배가 되게 하시고 찬양이 되게 하십시오. 경건의 뿌리가 깊이 깊이 뻗어갈 것입니다. 넷째 어려운 이웃을 도우십시오.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을 기꺼이 나누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내것을 나눠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경건에 큰 훈련이 됩니다. 훈련의 강도가 세지고, 깊이가 깊어지면 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되지요. 그리고 내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됩니다. 마지막 다섯째 절제하십시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운동 선수들 보십시오. 절제에 성공하면 이기는 것이고 절제에 실패하면 경기를 하나마나 이미 진 것입니다. 끓어오르는 욕망과 욕심을 억눌러야 합니다.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하고 싶은 것 다하는 것이 복있는 인생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이 복있는 인생입니다. 말에도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입을 막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욕하고 쌍말하고, 남을 비방하고, 이간질하고 그러지 말란 말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잘 실천하면 경건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될 겁니다. 경건한 사람이 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경건한 삶, 곧 종교 생활 혹은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경건에서 시작됩니다. 경건이란 뿌리에서 종교란 줄기가 나고 종교란 줄기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것이지요. 경건의 뿌리가 깊을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고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예배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물론 이 나무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햇빛이 절대 필요 하지요. 그러나 우리도 열심히 뿌리를 돌보고 강화시켜야 합니다. 곧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하고 힘쓰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신앙생활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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