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메타포로 배우는 곳입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셔서 네이버 카페 / 소풍교회 배움터 / 로 가시면 기독교강요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곳을 눌러 보세요.
기독교강요 1부 4장 : 벌레 먹은 씨앗 | 임병욱 목사 | 2024-11-06 | ||||||||||||
|
||||||||||||||
[성경본문] 로마서1:21-23절 개역개정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어떤 분이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새벽시간에 성경 말씀만 묵상하면 되지 기독교강요는 왜 공부하느냐고 말입니다. 제가 그 분께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무식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묵상하고 있는 기독교강요는 성경을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과 성경이 계시해 주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쓴 목적을 들어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세번째 꼭지점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믿음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경이란 거울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은 오직 성경에 비취는 하나님을 실제처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참 믿음을 계속 강화시켜 줍니다. 기독교강요는 바로 그 ‘믿음의 눈을 밝혀 주는 안경’같은 것입니다. 기독교강요는 믿음의 눈을 밝혀서 성경을 보다 잘 보게 하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분명히 보게 함으로써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성경 해석의 안내자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을 바르게 해 줌으로써 교회의 순결성과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기독교강요는 성경을 바르게 보는 안경이요, 성경의 진리를 바로 세우는 교리라는 것입니다. 교리에 대한 설명은 다음 시간에 덧붙이겠습니다. 어제 1부 3장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그 마음에 종교심과 양심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다고 배웠지요? 그 씨를 심으신 목적은 참 종교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경외하게 하며,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의 윤리와 도덕을 지키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그랬습니다. 즉, 종교의 씨앗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열매를 맺는 것이고, 양심의 씨앗에서는 인간의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윤리와 도덕의 열매를 맺습니다. 정직의 열매, 효도의 열매, 성결의 열매, 사랑의 열매, 봉사의 열매, 충성의 열매 등등 많습니다. 그런데 씨앗을 벌레가 갉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벌레먹은 씨앗은 죽었기 때문에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만,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종교심과 양심의 씨앗을 벌레가 갉아 먹습니다. 그러면 아름답고 풍성한 종교의 열매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대신 이기심과 욕심, 교만과 허영에 의해 미신의 열매, 망상의 열매, 외면의 열매, 위선의 열매만 맺힙니다. 먹으면 배부르게 하는 열매가 아니라, 병들고 죽게 만드는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벌레먹은 종교심과 양심의 씨앗에서 나오는 첫번째 열매가 무슨 열매라고요? 미신(迷信)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만들어져 으앙 하고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죄인이란 말은 죄라는 벌레가 그 마음 속에 심겨진 종교심과 양심의 씨앗을 파 먹었다는 말이지요. 이 몹쓸 놈의 죄 때문에 병들고 부패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교만과 허영이 만나 결혼하고, 이기심과 욕심이 손잡아 협력하며, 호기심과 억측이 마음을 같이 하고, 분에 넘치는 욕구와 거짓 신뢰가 서로 어깨동무하여 장난하고 춤을 춥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바르게 살기 보다는 미신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지요. 미신(迷信)이란 말은 진리의 길을 잃고 헤매이게 하는 믿음이란 뜻입니다. 참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참 진리, 사람답게 살게 하는 참 진리이 길을 잃고 귀신과 우상을 섬기고 탐욕과 정욕에 사로잡힌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미신의 열매가 그 마음에 가득 맺히는 사람들은 이사를 갈 때에도 점쟁이에게 가서 날짜를 받아 갑니다. ‘아무날 아무시에 이사 가거라~ 그 날이 손 없는 날이니라.’ 그러면 점쟁이의 말에 순종해서 이삿짐 센타 가격도 비싼데 꼭 그 날에 이사를 합니다. 왜요? 그 날이 손 없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손 없는 날이 무슨 날일까요? 손이란 말은 귀신이란 말입니다. 집을 옮길때마다 그 집에 살던 귀신들이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데 귀신들이 한 눈 팔고 있어서 괴롭히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귀신들이 한 눈 팔고 있는 사이 빨리 이사 하자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결혼 날짜도 점쟁이에게 받아서 합니다. ‘아무날 아무시에 결혼하거라. 재수가 좋은 날이니라.’ 그 뿐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하고, 대학에 떨어지고, 시름시름 병에 걸리는 것이 다 귀신들 때문이라고 믿고, 이 귀신들을 몰아내기 위해 굿을 하기도 합니다. 귀신들에게 예물을 바쳐서 아양을 떨다가 안 통하면 더 큰 귀신을 불러다가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귀신끼리 다툼을 하는 것이지요. ‘이 부적을 책가방에 넣고 다니면 공부가 잘 될 것이니라~’, ‘이 부적을 자동차 의자 밑에 넣고 다니면 사고가 안 나리라!’ ‘이 부적을 베게 밑에 넣고 자면 아들을 낳으리라~’ 왜 부적을 비싼 돈 주고 삽니까? 내가 잘 되고 안 되는 것은 다 귀신 장난인데 부적은 그 귀신들의 장난을 막아 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 조상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왜요? 조상 귀신들을 잘 대접해야 자손들이 잘 되고 복받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상 귀신들을 잘 달래줘야 합니다. 또, 집을 지을 때도 고사, 새 집에 들어가기 전에도 고사,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도 고사, 자동차 첫 운행을 할 때도 고사, 이런 일 저런 일에 귀신을 달래가며 귀신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귀신의 종노릇 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아파트나 높은 건물들에는 4층이 없습니다. 1층 2층 3층---그 다음엔 5층입니다. 왜요? 4자는 죽을 사(死)자와 발음이 똑 같아서 재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장난 노는 숫자라는 것이지요. 사주팔자를 보고, 운수를 점치고, 귀신을 두려워 하고 귀신의 종이 되어 절절 매며 살아갑니다. 이런 것을 바로 미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벌레먹은 종교심과 양심의 씨앗이 맺는 첫번째 열매입니다. 두번째 열매는 망상입니다. 동해안에 가니까 망상 해수욕장이 있더군요. 다른 글자이긴 합니다만, 저는 해수욕장만 가면 꼭 이 망상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망상이 뭡니까? 망상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상상, 망하게 하는 생각이란 뜻입니다. 엉터리 생각, 엉터리 상상이란 말이지요.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예수님을 안 믿으면 누구나 쉽게 망상에 빠집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민족이 다 자기들의 신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십시오. 얼마나 그럴 듯합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가짜 신들을 진짜처럼 믿고 예배합니다. 어제 잠깐 보았지요? 민족마다 나라마다 수많은 우상들과 절간들 사원들.... 이런 것들은 모두 망상의 열매들입니다. 또, 어떤 민족들은 살아 있는 지도자를 우상으로 섬깁니다. 히틀러를 보세요. 망상에 사로잡힌 한 사람 때문에 수천 만의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물로 죽어가야 했습니다. 옛 독일 나찌의 깃발에 새겨진 이 ‘만(卍)’자는 힌두교에서 나온 것인데, 세계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비슈누(후에 크리슈나로 화신함)란 신의 가슴털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낸 길조의 징표라고 합니다. 물론 망상으로 만들어낸 신화이지요. 그러니까 ‘만’자는 원래 평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갖다가 살짝 눕혀 놓고 써먹으면서 미치광이 나찌 폭력 단체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동안 러시아에선 머리를 박박 밀은 스킨헤드 족이 나찌의 부활을 외치면서 등장해서 무차별 외국인들을 죽이고 다녔습니다. 미치광이들이지요. 이게 다 사람이 죄인인 증거입니다. 바로 우리 위에 있는 북한은 어떻습니까? 저들도 마찬가지 집단 망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김일성 동상을 세워놓고 온 국민이 정기적으로 그 앞에 나가서 숭배하게 합니다. 외국인이 북한을 방문해도 꼭 먼저 그 동상 앞에 데리고 가서 절하게 한답니다. 참 하나님의 자리에 김일성을 대신 앉혀 놓고 숭배하고 있습니다. 망상은 참 하나님의 자리에 온갖 요사스런 우상과 귀신들을 앉혀 놓고 숭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터무니 없는 짓을 뻔뻔하게 해댑니까? 그 마음 속에 있는 종교의 씨앗을 죄라는 벌레가 씹어 먹었기 때문입니다. 벌레먹은 씨앗에서 나오는 세번째 열매는 외면입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죄인인 또 다른 증거가 바로 외면입니다. 외면은 얼굴을 돌리고 꼭 봐야 하는 것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4:1과 53:1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적인 외면이지요. 이것은 마치 자기 눈을 감고서 ‘태양이 사라졌다.’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눈을 감아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태양이 사라진 것입니까? 미친 사람이지요?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고 외칩니다. ‘태양이 없어졌다!’자기 눈이 죄로 덮여 가린 줄은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자는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런 것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저 어리석은 자들은 오만하고 상습적인 죄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너무 완고하여져서 본래부터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미친듯이 지워버리려고 날뜁니다. 그런데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심판하심과 섭리하심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을 하늘에서 장난이나 하는 게으름뱅이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아주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외면의 열매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열매는 위선입니다. 위선이 뭡니까?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입니다. 자기 욕망과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속이고 사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이런 위선은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자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처형 당하셨습니까? 예수님과 똑같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던 유대 바리새인들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진짜로 하나님을 믿고 섬겼더라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배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예배했을 뿐 실제로는 자기 자신들의 자랑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정체를 손바닥 보듯 환하게 들여다 보는 예수님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린 것입니다. 또 십자가 하면 가룟 유다를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는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성공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도 자기의 출세 성공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유대인들에 은전 30냥에 팔아먹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 하고, 예수님 보다 부자되고 출세하는 것을 더 좋아 하면 그것을 바로 위선자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끼어 있다가 결정적일 때 교회를 찢고 쪼개고 예수님의 이름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위선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자기의 욕망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 만드실 때부터 그 마음에 종교심과 양심의 씨앗을 심어 주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본래 마음에 심긴 종교와 양심의 씨앗은 없앨 수 없습니다.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무신론자라 해도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다가도 절망과 급박한 일들을 당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고, 형식적으로나마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래부터 종교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씨앗이 벌레 먹고 부패했다는 것이지요. 그 마음에 심겨진 종교심과 양심이 죄의 벌레에 갉아 먹혀 미신과 망상, 외면과 위선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질병을 치료할 약이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바로 그 특효약입니다. 특효약인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영접하면 경건의 뿌리가 깊이 내린 종교의 나무가 됩니다. 참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예배하고 의지하는 열매를 평생 맺게 되지요. 또 경건의 뿌리를 깊게 내려 양심의 나무가 됩니다. 선한 도덕의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게 되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경건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종교의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믿음의 사람이라면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어떻게 연습하냐고요? 동그라미 세 개를 기억하면 됩니다. 경건의 세 동그라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경건을 연습하십시다. 운동선수처럼 연습하십시다. 말씀과 기도와 사랑이 잘 뭉쳐져서 큰 경건의 나무로 자라기를 훈련해 봅시다. 그래서 벌레먹은 씨앗의 열매들이 아니라, 평생 뿌리 깊은 나무로 잘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가 주렁주렁 풍성하게 맺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