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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1부 9장 : 남편과 아내 임병욱 목사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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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6:13-14절 개역개정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6월 25일 화요일

 

신부가 되고 싶었던 존 칼빈이 사제의 길을 버리고 도리어 로마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며 종교개혁의 길에 들어선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로마카톨릭 교회가 얼마나 성경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보았기 때문이지요. 로마카톨릭 교회의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는 성경을 자의로 해석하여 성도들의 양심을 구속하고, 성경 외의 계시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교리를 합당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존 칼빈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최종 권위로 보았습니다. 오직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며, 모든 교리와 신앙 생활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성경의 진리를 명확히 드러내고, 성경 해석의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칼빈은 성경 해석의 참된 증인이요 최종적인 해석자는 오직 성령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며, 성령을 통해 신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얻고 성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는 오직 성령이 믿음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주관하신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신앙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기독교강요 제19장은 성경의 신뢰성과 성령과의 관계에 대해 다룹니다. 곧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권위는 인간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성경의 예언, 기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등의 외적 증거도 언급하지만, 이러한 외적 증거만으로는 성경의 신빙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내적 증거가 함께 작용해야 하는데, 성경이 스스로를 입증하는 방식, 즉 성령의 내적 증거가 성경의 진리성을 확립한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 확립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믿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러한 사실은 남편과 아내라는 은유로 공부해 보는 것입니다. 남자라고 다 남편이 아니고 여자라고 다 아내가 아니지요.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되고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전혀 다른 존재이지만, 또한 그렇게 서로에게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성령과 성경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그것에 비유하기가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서로의 그 특별한 관계를 이해하는데 이것 만큼 분명한 비유도 없습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령과 성경의 관계는 마치 남편과 아내의 관계처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남편없는 아내없고 아내없는 남편없는 것처럼, 성령없는 성경 없고, 성경없는 성령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령은 반드시 성경과 함께 역사 하심으로써 교회(성도)를 태어나게 합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성령은 성경 때문에 성령이 되고 성경은 성령 때문에 성경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 없이는 성령이 아니고 성령 없이는 성경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성령을 아는데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한 성경을 아는데도 성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떠나서, 성경 없이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정신이상자 같은 미침 증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가 성령의 계시를 직접 받는 사람인양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에만 매달려 사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자기들이 받는 성령의 직접 계시에 비하면 성경은 죽은 문자요 또 죽이는 문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잘 안 읽습니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미 그들은 성경과 상관 없이 화끈하게 임하는 성령의 가르침에 맛이 들어 있기 때문에 종이 위에 잠잠히 누워 있는 활자들에는 아무 흥미도 못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곧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고 증명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은 절대 자의(自意)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우리들을 성경으로 인도하십니다(16:13). 그래서 교회가 성령의 통치 아래 있다는 말은 곧 교회가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지요.(59:21).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을 읽는 일에 착념하라고 했고(딤전4:13), 성경이야말로 성도들에게 구원을 줄뿐 아니라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책이라고 노래했습니다(딤후3:16-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임무는 우리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성경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교리를 우리의 마음에 깨닫게 하고 확증시켜 주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경과 아무 상관 없이 우리를 만나시는 영이라면 그 영이 과연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성령이신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요일4:1).

그리고 성령은 자신이 기록한 성경에 의해서만 자신을 인정 받습니다. 곧 성경과 아무 상관 없이 성령을 알고 경험하려는 자들은 광신자입니다. 경찰에게 혹은 은행에서 내가 인것을 증명할 때 내가 직접 라고 말하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꼭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주민등록증은 내가 임을 증명하는 기록된 증명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을 기록된 성경 말씀에 의해서만 증명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왜요? 사탄도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후11:14). 그렇기에 성령을 확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주민등록증(성경)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성령과 악령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성령은 언제나 성경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안심하고 확신 있게 성령을 알고 따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성령이 성경을 떠나지 않으신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화를 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겨우 성경 66권에 얽매이고 종속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성경을 성령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만 사람들이 편집해낸 종교 경전정도로 여긴다면 저들의 주장도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곧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저들은 머리가 상당히 나쁘거나 마음이 대단히 나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만약 성령이 사람들이 만든 어떤 기준이나 또는 다른 것들에 의해 확인되고 인정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성모독입니다. 성령은 사람이나 천사나 다른 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이 직접 만드신 성경에 의해서만 확인되고 인정 받으십니다. 이 말은 곧 성령은 성령 스스로 자신을 확인하고 인정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이렇게 성령은 항상 오직 성경에 계시해 주신 자신의 모습대로만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성경은 성령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주민등록증인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내없이 남편이 될 수 없고 남편없이 아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성령과 성경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경없는 성령은 남편이 아닙니다. 성경과 상관 없는 성령은 하나님이실 수는 있어도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그 약속의 성령은 아니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은 오직 성경에 약속되었고 성경에 소개되었고 성경을 통해 역사하시기로 약속된 성령이십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성경을 떠난 성령을 받은 적이 없고, 받을 이유도 없고, 앞으로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은 항상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또 성경 말씀 속으로 우리를 인도해 들이십니다(24:27,45).

또 성경을 떠난 성령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을 떠난 성경도 성경이 아닙니다. 성령이 함께 하실 때 비로소 성경은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고 성도를 바르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위력을 나타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지혜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성경을 믿게 하시고 성경에 계시된 성령을 영접하고 따르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말씀에로 부르고 있고, 또한 성령도 그렇게 성도들을 성경으로 이끄십니다. 성령과 성경은 그처럼 서로 완벽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말씀이지요.

성령 하나님의 별명은 진리의 영입니다. 왜 진리의 영이라고 불립니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지옥이 무엇인지, 십자가가 무엇이고, 구원이 무엇인지, 천국이 무엇인지, 사탄이 누구이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이 모든 진리는 기록된 성경 66권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40여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셔서 그 모든 진리를 성경 66권 안에 다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요한복음15:26)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16:13-14)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무엇으로 알린다고요? '내 것' 곧 예수님에 대한 진리의 말씀이지요.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가지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경이 성도들에게 주지시키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일4:1)1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세상엔 영들이 많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을 성령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을 귀신, 악령들이라고도 부르고, 악령들의 대장을 사탄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성령과 악령을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성령과 악령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을까요? 답은 하나, 오직 성경 말씀으로 비추어 보아 그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성경과 틀리면 악령이고, 성경과 맞으면 성령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경을 주민등록증처럼 사용하십니다. 스스로 성경에 매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귀신에게 속지 말라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요일4:6)6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목사다 주의 종이다 하면서 부흥회하고 집회하고 다니는 거짓 선지자들은 대부분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성령 집회 운운하면서 성경은 거의 안 가르치고 병고침과 치유, 예언 등 희한한 짓들만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집회에서 병들이 척척 고침 받습니다. 암도 고치고, 결핵도 고치고, 류마치스, 더러는 소아마비도 고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놀래서 완전히 엎드립니다. 그렇게 척척 병을 고치는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면 누가 성령 받았겠느냐 하면서 열심히 쫓아다닙니다. 그리고 안수만 하면 사람들이 벌렁벌렁 넘어갑니다. 그리고 기절하고, 또 정신을 잃고서 누워서 방언이라며 중얼중얼 막 이상한 소리를 떠듭니다. 그리고 안수하면서 무당처럼 족집게처럼 과거를 알아 맞추고 예언을 해 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성령의 이름을 빌려 장사하고 사람들의 믿음을 미혹하는 악령의 앞잡이로 보면 됩니다. 이런데 한번 맛을 들이면 성경을 못 읽습니다.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꾸 그런 집회 가서 화끈하게 뒤로 벌러덩 하고 싶지 가만히 앉아서 성경을 읽고 싶지 않습니다.

둘째, 성경을 가르친다 하면서 주로 다니엘서나 계시록만 가르칩니다. 신비한 예언서들을 척척 풀어 준다고 그러는 데는 거의 이단으로 보면 됩니다. 이런데 좇아 다니기 시작하면 이제 교회 생활이나 성경 읽고 공부하는 것이나 사회 생활이나 다 비딱하게 됩니다. 광신자가 되는 것이지요. 성경도 희한하게 이해합니다. 그 이단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도무지 성경을 읽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됩니다. 성경과도 멀어지고 성령과도 멀어지고 교회와도 멀어지고 사회와도 멀어지게 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을 떠나 직접 성령의 계시를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어리석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열광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경건의 기둥을 모두 흔들어 뽑아 내려는 아주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떠나 직접 성령의 계시를 받는다는 것은 곧 성경의 절대 필요성이나 절대 충분성이나 절대 권위를 모두 부인하는 꼴이기 되기 때문입니다(딤후3:15-17). 성령과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처럼 서로 완전히 결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사랑하고 날마다 밥 먹듯이 규칙적으로 읽느냐 안 읽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릴 때부터 평생 힘써 행할 일이 바로 성경을 바로 알고 풍성히 아는 것입니다. 왜요? 성령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내 안에 충만히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오직 성경 말씀과 함께 우리의 마음 속에 믿음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고, 밝은 빛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인 것처럼 성령과 성경은 그렇게 하나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성경을 갖고 우리들을 자녀로 삼고 자녀로 키우고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성경 말씀으로 내 삶을 채워서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고,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성경 말씀을 아멘으로 붙들고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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