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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1부 15장 : 부전자전 임병욱 목사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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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1:26-28절 개역개정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7월 3일 수요일

부전자전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의 뉘앙스는 살짝 부정적인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만, 어쨌든 부전자전은 아버지와 아들이 닮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존 칼빈은 115장에서 인간이 부전자전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고 합니다. ,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인간이 이성과 도덕적 판단력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칼빈은 인간이 창조될 당시 완전하고 무결한 상태에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창조 당시에는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타락 이후로는 그 자유의지가 손상되었다고 말합니다. , 인간은 타락 전에는 선을 행할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타락 이후로는 죄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자유의지가 제한되고 왜곡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빈은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영혼은 이성과 의지를 지닌 실체로,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로 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엄성과 가치를 지니며, 이는 인간에게 특별한 책임을 부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살아가야 하며, 그 책임을 다해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이성과 도덕성이 손상되었으며, 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입니다.(1:27) 이는 창조시에 흠 없는 완성품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결코 부족하거나 타락된 존재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의 못된 버릇 중 하나가 자기의 죄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부패함과 더러움은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본성 때문인데, 그러한 본성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니 인간의 죄의 책임은 결국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리지요. 그럴 듯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의 본성은 창조되어질 때부터 결함이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실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정신 나간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을 만드심에 있어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을 완전무결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죄에 대한 책임을 결코 하나님께 돌릴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았지만, 결코 원숭이나 여우나 개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닮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람만 닮았습니다. 사람만 하나님을 닮은 독특하고 특별하고 완전한 존재로 지으신 것이지요.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있습니다. 곧 짐승에게는 없고 사람만 갖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일까요? 영혼입니다. 오직 사람만 영혼이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영혼이란 그릇에 담아 주셨습니다. 동물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는 이 그릇, 곧 영혼이란 게 없습니다. 오직 사람의 영혼 속에만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질그릇 같은 인간의 육체 속에 넣어 주신 불멸의 영혼이지요.

그래서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12:7)고 솔로몬도 노래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실 때 자기의 영혼을 성부께 부탁하셨고(23:46), 스테반도 죽을 때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 자기 영혼을 의탁하였습니다(7:59). 바울도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라.’(고후7:1)고 신자들을 권고하면서 죄의 더러움이 머무는 곳이 두 곳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1:9;2:25)고 말하면서 영과 육을 대조시켜 주었습니다. 또 예수님도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10:28 12:5)고 가르치셨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육체의 아버지영의 아버지를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와 영혼 중 사람에게 보다 더 귀한 부분은 물론 영혼입니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탁월한 은사들과 신적인 그 무엇이 바로 그 영혼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는 말은 듣기에 정말 황홀한 말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니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일까요? 형상이란 것은 쉽게 말해서 성품이나 능력, 본질이라고 하면 됩니다. 가장 쉽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완전성입니다. 아담은 바른 이해력을 갖고 있었고, 자기 감정을 이성에 잘 따르도록 통제할 수 있었고, 언어를 사용하고 또 생각도 하며 만물을 잘 보존하고 다스리며, 또한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탁월한 은사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인간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물론 사람 몸에 나타나는 신적 영광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은 영혼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이 그렇게 확대되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쉽게 이해가 안된다면 다음 장면들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타락했던 죄인이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거듭나서 회복되는 장면입니다. 인간이 죄 때문에 잃은 것이 무엇이고, 예수님 때문에 회복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지요.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파괴되고 부패한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주신다는 의미에서 제2의 아담이라고 불려집니다. 첫 아담은 산 영으로 지음 받았으나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으로 오셨습니다.(고전15:45).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납니다. 물론 다시 태어나는 중생의 은혜는 첫 창조의 은혜보다 훨씬 더 부요하지만, 역시 그 핵심은 잃었던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다음 두가지 말씀은 중생으로 말미암아 회복되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장면들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4). 그러니까 성령의 중생의 은혜로 우리 속에서 회복되는 하나님 형상의 첫째는 지식이고, 둘째는 순결한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는 말씀이지요. 회복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또한 창조될 때에도 가장 중요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이나 의, 혹은 진리의 거룩함 등 당연히 인간의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엄청난 공상들을 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옛날 마니교도들이 주장했었고 후에 다시 세르베투스가 소개했던 것입니다. 곧 이들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에서 유출된 것이라고 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본질을 나누어 가진 존재란 말이지요. 이것은 영혼에 대한 망상이요, 공상입니다. 만일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을 나눠가진 것이라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본질을 나누어 가진 인간이 타락했으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도 변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본질도 악한 욕망에 오염될 수 있고, 고뇌할 수 있고 무지할 수도 있고, 각종 악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부패한 인간의 마음을 보십시오. 인간의 마음은 하수구와 같고 모든 더러운 것들의 잠복소입니다. 만약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유출되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 모든 불결한 것들을 하나님의 본성 탓으로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하기도 두려운 망언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어디선가 유입된 것이 아니라 창조된 것입니다. ()로부터 전혀 새로운 존재가 시작된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데 그 때에도 죄로 인해 파괴되고 더럽혀졌던 영혼 속의 선()이 회복되는 것이지, 우리를 하나님과 동일 본질로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고후3:18). 우리의 영혼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이 우리 속에서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플라톤 등 세상의 많은 철학자들도 영혼의 기능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를 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정답을 맞추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는 인간 영혼의 근본적인 기능은 오성(悟性, Intellect)과 의지(Will)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 속에 자기를 닮은 두 가지 능력을 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는 오성입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무엇을 깨닫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인지적 능력입니다. 지성 혹은 이성이라고 해도 됩니다.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 그것이 바로 오성이 한 일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창조해내고 이해하는 힘입니다. 과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되고, 교사가 되는 모든 것이 다 이 오성의 힘입니다. ‘, 저것은 악한 것이야, 저것은 선한 것이야!’ 이것이 바로 양심의 소리이지요? 양심의 판단도 바로 오성이 하는 일입니다. 재판관처럼 분별하고 판단하지요.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충동질 하는 것도 바로 오성이 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 오성의 힘 때문에 사람이 사람인 겁니다. 이 오성을 빼면 인간도 개나 돼지랑 같습니다. 이 힘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자녀로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영혼을 심어 주고 그 영혼 속에 오성을 넣어 주신 겁니다.

그리고 의지가 하는 일은 지성이 습득하고 분별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지성이 선이라고 인정한 것을 선택하며 추구하고, 지성이 부인하는 것을 거절하며 피하는 것입니다. 지성은 영혼의 지도자요 지배자 같은 것이고 의지는 그 종과 같은 것으로서 지성의 명령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언제나 지성의 판단을 받아들일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은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육체를 집처럼 간주하여 거기에 머뭅니다. 그리고 육체의 각 부분에 생기를 넣어 주고, 육체의 각 기관을 각각의 행동에 적절하고 유용하게 조화시킬 뿐 아니라, 생각과 행동을 다스리며 모든 생활의 의무를 다하고 하나님을 예배 하도록 충동하고 자극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예배 하도록 하는 자극이나 충동은 타락한 인간들이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패한 인간의 영혼 속에도 그 흔적으로 새겨져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하나님의 형상 안에 인간의 영혼을 넣어 주셨으며, 인간의 영혼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독특한 기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혼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톡특한 기능인 마음으로 인해 그것으로 사람들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며, 이성의 빛을 안내자로 삼아 마땅히 따를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 철학자들은 이 지도적인 부분을 토 헤게모니콘’(,지도력)이라고도 불렀지요. 하나님은 이 지도력에다가 의지를 덧붙여 주셨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타락하기 전의 인간의 상태는 완벽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분별력과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별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선택의 능력이 더 해져서 인간은 모든 욕구를 조정하고 모든 기관의 활동을 조정하여 자신의 의지로 하여금 이성이나 지성의 지도에 전적으로 따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이런 완벽한 상태에서의 인간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였더라면 자기의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곧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충분히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자기가 원해서, 순전히 자기 의지로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그의 의지는 선과 악 중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질 수 있었고, 그런 선택에 있어서 그는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점이 아쉽다고요?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끝까지 악을 택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주시지 않았냐고요? 창조하실 때부터 아예 인간은 죄나 악을 원하지도 않도록 만드셨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뭔가에 눌리거나 혹은 기대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종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벽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완전한 지성과 완전한 의지로 준비된 인간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성품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쉽다고요? 왜 하나님이 범죄 하려는 아담을 인내할 힘으로 붙들어 주시지 않으셨냐고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밀한 예정과 계획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분수를 지켜 그 이상을 캐내려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은 완벽한 자유를 누렸다는 것이고, 이 완벽한 자유도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증거라는 겁니다. 안타갑게도 아담은 이 완벽한 자유 때문에 타락합니다. 곧 인간의 범죄는 아버지 하나님을 닮은 것이 아닙니다. 닮았다면 자기의 엄청난 행복을 그렇게 스스로 파괴할 수 있는 만큼의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는 바로 그 점이 하나님을 닮은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를 나약하고 위태롭게 만들어서 쉽게 타락하게 하고 그것을 자신이 영광 받으실 기회로 삼으시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도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항상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아담은 자기의 자유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엄청난 대가였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마 인간은 오직 지옥의 불구덩이에서만 사는 존재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의 자유를 자기 욕망과 욕심을 채우는 것에 활용한 죄를 지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주님이 흘리신 그 귀한 피가 내 죄 값을 대신 치르시는 보혈이라고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회복하게 해 줍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인간은 창조되기를 그렇게 창조되었지요.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혼을 주셨고, 그 안에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새겨 주셨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사람은 모든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되어 만물의 영장으로 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창조된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귀 사탄은 지금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오성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막 헷갈리게 만듭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참되고 바른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지 오성을 흔들어 헷갈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의지를 공격합니다. 선하고 좋은 줄을 알면서도 도리어 악하고 나쁜 것을 선택하라고 집요하게 충동질 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것은 닮지 말고 마귀의 나쁜 것만 닮으라고 막 조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내주해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고, 또 더 풍성히 회복하도록 돕고 있습니다(8:29; 4:19)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영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의 오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게 하소서. 주여, 우리의 의지가 성령의 생수를 마시게 하소서. 우리의 양심이 예수 보혈로 목욕하게 하소서. 그래서 날마다 마귀 닮지 말고 하나님 닮게 하소서.’

저와 여러분, 모두 기도한 대로 응답 받아 모두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뛰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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