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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1부 16장 : 보이지 않는 손 임병욱 목사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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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11:33-36절 개역개정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7월 4일 목요일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스코틀랜드,Adam Smith 1723-1790)는 그의 책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로 경제 원리와 시장 경제의 작동 방식을 설명했습니다. 즉 시장 경제는 개별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해 사회 전체의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예컨데 빵집 주인이 빵을 팔아 이익을 얻으려 하는 그 욕망 때문에 그 빵을 필요로 하는 사회의 필요를 채우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 때 빵 값은 수요과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마치 보이지 않은 손이 작동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마치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있는 것처럼 자유방임 시장에도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것이지요.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 116장에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세계를 능력으로 양육하시고 보존하시며 친히 다스려 가시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설명합니다. 곧 피조세계에서 매일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모두 어쩌다 일어나거나 우연히 벌어지거나 혹은 스스로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손 끝에서 나오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 모든 일들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손을 오늘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제목을 잡아 보았습니다.

섭리란 말은 한자어이지요. 에 다스릴 자입니다. 한마디로 다스리고 주무른다는 뜻이지요. 영어로는 PROVIDENCE라고 하는데, 라틴어 ‘pro-미리, videre-내다보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의 자연과 역사와 인생 개개인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미리 작정 하시고, 창조하시고,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직접 보존하고 다스려 그 작정 하셨던 뜻을 다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이기 때문에 외워야 합니다. 큰 소리로 따라 하세요.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작정 하시고, 창조하시고,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직접 보존하고 다스려 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와 짝꿍입니다. 창조는 뭐지요? 만든다는 것이지요. 섭리는? 창조하신 그것을 보존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하늘과 땅과 사람을 누가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은 누가 하십니까? 역시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주시면서 또한 동시에 섭리주십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한 동시에 그 천지 만물을 창조의 목적대로 계속 다스리시고 보호하십니다. 만약 창조만 하시고 섭리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십니다. 창조주시라면 그는 섭리하셔야 하고, 또 만물을 섭리하신다면 그가 곧 창조주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계에 어떤 운동력을 심어 주어 스스로 알아서 운행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까지도 직접 매일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10:29; 33:6,13), 때를 따라 만물에 식물을 주시고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104:27-30;17:28).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신앙처럼 받드는 우연이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운명이란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사람들은 불행한 일들은 다 운명으로 돌림으로써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 또 그 원인과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일들은 다 우연으로 돌림으로써 자기의 무지를 감추려고 하지요. 그러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운명우연도 없습니다.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작정과 간섭과 다스림 아래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서야 빠집니다(10:30).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을 기르는 저 태양도 운명처럼 정해진 자연법칙에 따라 뜨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멈추게도 하시고(10:13), 반대로 뒤로 물러 가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왕하20:11; 38:8).

여러분은 매일 아침 부지런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침마다 일정하게 뜨는 태양을 보면서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사랑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3:23). 그러니까 결코 태양이 세상 만물을 생존케 하는 제 일 원인이 아니지요. 두 가지 의미에서 태양은 도구 일뿐입니다. 첫째는 태양이 있기 전에 이미 빛이 있었고(1:3), 태양은 단지 그 빛을 전달하는 도구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태양은 날마다 하나님의 뜻과 힘으로 다스림을 받는 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태양을 마치 생명의 제 일 원인처럼 숭배하고 섬기는 사람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서 교묘하게 한 발 앞서 나갑니다. 즉 만물의 제 일 원인이 하나님인 것은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전망대 안에 가둬 버립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에는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 알아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시고 자신은 멀리 전망대 안에 앉아서 구경이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역시 만물이나 인간의 삶을 직접 다스리고 보존하는 것은 태양이나 별들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미신적인 공포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천재지변이나 악한 일을 만날 때마다 그런 피조물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의 징조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10:2). 세상 만사는 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밀하신 뜻과 그 보이지 않는 손의 능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사건, 모든 개인, 모든 자연 현상들을 확실히 다스리십니다. ,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과 또 우리 각 사람 하나 하나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그리고 자연이 보여주는 모든 현상들도 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보호하심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우선 에피쿠로스학파 같이 하나님이 게으르셔서 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 같으신 줄 아는가 봅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를 반 토막으로 만드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계의 일들만 다스리고 자연계와 세상 일들은 운명에 맡긴다고 공상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모든 일들을 다 직접 특별히 섭리하십니다(5:17; 17:28; 1:3).

그러니까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우주와 자연 만물과 인간들의 삶을 직접 다스리십니다. 하늘과 별과 바다와 생물들을 만들어 놓으시고 결코 너희끼리 알아서 살아라. 내가 일정한 법칙을 만들어 놓을 테니 그 법칙에 따라 살아라.’하며 팔짱끼고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들, 곧 자연과 동식물과 인간과 천사와 마귀까지 모든 피조물들의 살고 죽는 것과 흥하고 망하는 것과 그 모든 말과 행동을 직접 다스리십니다. 절대 구경만 하거나 나중에 뒷북치며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직접 작정하시고 보존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럴 능력이 없으시다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모든 것을 또한 섭리 하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아무리 사탄이 방해하고 죄인들이 어리석게 굴어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뜻하신 목적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혹은 풍년을 통해, 혹은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기도 하고, 홍수나 지진이나 가뭄 등 재해를 통해 심판을 보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때 감사하고, 회개할 때 회개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풍년이나 재난이나 전쟁 등이 다 스스로의 어떤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세상 만사를 통해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이나 죄를 벌하시는 심판주로서의 공의를 도무지 찾아볼 데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데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계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신다는 것입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담은 것이기도 한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26:3,4; 11:13,14; 28:2; 2:17; 147:9; 113:5-6). 그래야 우리의 하루 하루 생활이 풍성하고 또 의미 있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특별히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모든 걸음은 하나님이 결정하고 말의 응답도 하나님이 하십니다(10:23; 20:24; 16:1,9,33). 하나님은 홀로 사람들의 생사와 부자되고 가난하게 되는 것과,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을 결정하십니다(삼상2:6-10; 21:13; 29:13; 75:6,7). 그를 위해 하나님은 자연의 모든 현상들도 조정하십니다. 광야에서 바람을 일으켜 많은 새들로 자기 백성을 먹이기도 하셨고(16:13; 11:31), 큰 동풍으로 홍해를 가르기도 하셨고(14:21), 폭풍으로 도망가는 요나를 배에서 찾아 내시기도 하셨습니다(1:4). 한 마디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모든 자연의 세력을 자기 사자로 삼으시고 사용하십니다(104:3,4;107:25,29; 4:9). 그렇기에 사람이 자식을 낳는 것도 본래 갖고 있는 생식력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출산되는 생명 하나 하나가 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요 섭리입니다(113:9; 127:3; 30:2).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일용할 양식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3:1; 6:11; 136:25). 그리고 하나님은 직접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의인들을 도우시고 악인들을 대적하십니다(34:15,16).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참된 원인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컨데 엊그제 벌어진 시청 뒷골목에서 돌진하는 차량에 의해 9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고 합시다. 그 때 죽은 사람들은 우연히 죽은 것일까요? 혹은 죽을 운명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우연(chance)’이란 말과 운명(fortune)’이란 말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 단어들을 마치 신을 섬기듯 섬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니까 그것이 곧 스토아 학파의 숙명론과 같은 것이 아니냐고 그럽니다. 숙명론자들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원래부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다고 믿습니다. 자연 속에는 그러니 그럴 수 밖에 없는인과(因果) 관계가 있다는 것이고, 세상 모든 일은 다 그것 때문에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필연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은 바로 그런 말을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탄한 말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딤전6:20). 저 유명한 바실(Basil)도 운명(fortune)이나 우연(chance)이란 말은 이교도들이나 쓰는 말이니 경건한 신자들은 절대 그런 말들을 마음에도 두지 말고 입에도 두지 말라고 경고해 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 이것은 운명이다.’라고 말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어거스틴도 그 점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또 말하기를 세상 만사는 다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하는 것이지 어떤 일도 인간의 의지 때문에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망대 위에 앉아서 이것 저것 허락하는 일이나 즐기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직접 모든 일을 챙기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곧 이어서 아주 분명하게 주장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왜 그렇게 작정하셨는지를 다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의 이 마지막 주장은 매우 지혜로운 것입니다. 왜냐구요? 우리의 이해력은 너무나 한계가 있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깊고 높으신 뜻을 눈꼽 만큼도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작정되고 조정되는 것이지만 그것들이 발생할 때마다 어리석은 우리 눈에는 마치 우연적인 것처럼, 운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운명이란 말이 전도서에 자주 나옵니다(2:14,15; 3:19; 9:2,3,11). 너무나 제한적인 사람의 눈에는 어떤 사건들이 우연도 되고 운명도 되는 것이지요.

이제 앞서 예로 든 시청 뒷골목의 죽음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 전쟁 등으로 인한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 모든 것들이 우연일까요? 아니면 운명일까요?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의 죽음을 미리 아셨고 또한 그렇게 되도록 작정하신 것입니다(14:5). 공중을 나는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수십 명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다. 또한 수 백만 명이 죽고 수 천만 명이 다치는 많은 전쟁들이나 재해 등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운명을 다스리며 작정하신 목적을 향해 인도하시는 것이지요.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예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의도가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19:33,36).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 눈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연인 것처럼 운명의 장난인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뒤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우연이나 운명의 장난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으십시오. 그 모든 뒤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다스리시고 조정하십니다. 그래서 만물이 다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인간의 둔한 머리로는 하나님의 그 깊고 높으신 뜻을 다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또 모든 일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다 알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29:29).’고 했습니다.

비록 아무도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도 없고, 그리고 함부로 아는 척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러나 영어를 배우면 영어책을 읽을 수 있듯이 성경을 공부하면 하나님의 그 오묘한 섭리들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읽는 연습을 하십시오. 푹풍 속에서도 읽으십시오. 전쟁과 평화 속에서도 읽으십시오. 성공과 실패 속에서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섭리의 안경을 쓰고 우연과 운명처럼 보이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려고 애써 보십시오. 여러분 앞에 하나님의 신비하고 놀라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야곱의 12아들을 만드시려고 열을 올렸던 야곱의 부인들의 몸부림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려고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했던 이유가 보이실 것입니다. 광야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하게 하시려고 40년 동안 모세를 광야의 목동으로 살게 하셨던 하나님의 세심함이 보이실 것입니다. 밟은 땅들을 통치하게 하시려고 다윗의 꽁무니에 사울을 붙여놓아 열심히 도망다니며 땅밟기를 하게 하신 하나님의 배려가 보이실 것입니다. 구약과 율법에 통달했던 사울을 다메섹 가는 길에 만나 바울 되게 하셔서 완벽한 복음을 설명하는 사람되게 하신 하나님의 열심이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안경을 쓰고 보면 부르스길라 아굴라가 왜 천막 깁는 일을 했는지, 자주장사 루디아가 왜 빌립보에 갔는지, 바울과 실라가 왜 빌립보 감옥에 갇혀야 했는지, 바울이 왜 로마로 압송이 되어야 했는지, 바울이 탄 배는 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야 했는지 그 모든 궁금증들이 풀리고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안경을 쓰고 보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했는지, 내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오늘 내가 왜 여기 살아야 하는지, 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지, 짊어지고 있는 짐들은 무엇이며, 가야 하는 길은 어딘지가 환하게 보이실 것입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천지 만물과 역사와 우리의 인생을 계획하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 세밀하시고 치밀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과 다스리심이 고스란히 성취되는 은혜와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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