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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1부 17장 : 그림 퍼즐 | 임병욱 목사 | 2024-1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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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독교강요 1부 17장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유익에 관한 내용이지요. 그 내용을 하나님의 섭리는 그림 퍼즐 맞추기이다 라는 제목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퍼즐로 된 그림을 맞춰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퍼즐 조각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그림 퍼즐이야 금방 맞추겠지만 퍼즐 조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전체 그림을 옆에 놓고 맞춰야 쉽게 맞출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그림이 서울의 크기만하거나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만 하고 퍼즐의 갯수도 수 백억개가 넘는다고 해 보십시오. 아마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은 온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작정하시고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번에는 그림 퍼즐로 설명해보려는 것입니다. 온 우주와 세상의 모든 역사에 가득한 사건과 사람 조각들은 그 하나 하나가 하나님이 작정하신 전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조각 그림’들입니다. 물론 그 전체 그림은 하나님만 아시지요. 우리 인간은 아무도 그 전체 그림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한 조각 그림이 되어 동참할 뿐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그 전체 그림을 다 맞출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그림 퍼즐을 맞춰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림 퍼즐 공부를 하십시다. 세상 만물과 역사를 그림 퍼즐 맞추듯 맞춰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공부함에 있어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지전능하신 분, 곧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무소부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작정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과 역사를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아멘이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해 가실 때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통치하실 까요? 아니면 어떤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통치하실까요?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통치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과 계획은 그때 그때마다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변경하실까요? 아니면 처음 세우신 그대로 진행하실까요? 물어 무엇하겠습니까? 당연히 처음 세우신 목적과 계획대로 통치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또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세우신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금도 그 목적과 계획을 완성해 가시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11-12)“11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11:36)“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다음 세 가지를 놓치면 안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일까지도 다 포함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퍼즐 조각처럼 사용하여 뜻을 이뤄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의 섭리는 온 인류를 포함하시지만 특히 교회를 보호하고 다스리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 요점만 충분히 이해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셈입니다. 거기에 더해 한 가지를 더 첨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섭리의 퍼즐 조각을 맞춰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엄하신 공의를 뚜렷이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건들의 참 원인을 깊이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는 세상 만사가 어쩌다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고, 우연히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타고난 자기의 운명을 따라 사는 것이라느니, 아니면 하나님이 공을 가지고 놀 듯 인생들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것이라느니 헛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생각은 너무 망령되고 경솔한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너무 짧아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최상의 이유를 갖고 모든 일을 계획하고 다스려 가신다는 시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40:5)“5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성경이 퍼즐 조각 맞추듯 세상을 맞춰 가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분명히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뜻이지요. 무엇일까요? 율법(복음)이지요. 물론 율법(복음)도 우리의 감각과 이해를 훨씬 초월하는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총명의 신’(이사야11:2)으로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확실하며 분명한 등불이 된다고 말합니다.(시119:105; 잠6:23). 또한 그렇게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의 뜻도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감추어져 있는 우주와 세상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이지요.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36:6)‘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사도 바울조차도 이런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로마서11:33)“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모세는 그 두 종류의 뜻에 대해 아주 명쾌하고 아름답게 표현해주었습니다. (신29:29)‘29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작정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은밀하신 뜻을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또한 동시에 이미 분명히 밝혀주신 하나님의 뜻(말씀)에는 충성스럽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뜻대로 통치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결코 우리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하시는 것이면 인간은 책임이 없겠네? 그렇다면 죄를 지어도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겠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스(Iliad)」에 등장하는 미케네 왕 아가멤논(Agamemnon)도 자신의 결정이 결과적으로 그리스군에 불리한 상황을 초래하자 그런 말을 하지요. ‘죄의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우스신과 운명의 여신에게 있다.’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신들의 뜻과 운명으로 돌림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아가멤논처럼, 사람들은 자기의 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뒤집어 씌우려 합니다. 내 모든 행동은 다 하나님이 그렇게 시킨 것이고, 그럴 운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것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그렇다면 살인자도 간음자도 도둑놈도 모두 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한 섭리의 대행자가 되는 것이지요. 곧 이 세상의 모든 범죄가 다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이쯤에서 문제를 하나 내지요.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맞춰 보십시오. 길거리에 개 한 마리가 죽어 버려져 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햇볕에 부패되고 썩어 심한 악취가 납니다. 그렇다면 그 악취는 햇볕 때문에 난 것입니까? 아니면 죽은 개 때문입니까? 당연하지요. 아무도 햇볕 때문에 악취가 난다고 말 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개라면 똑같은 햇볕이 도리어 그에게 생기를 더해 주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범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죄 까지도)에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나는 썩은 생각과 썩은 행동은 하나님의 섭리 탓이 아닙니다. 순전히 본래 부패한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말씀에 분명히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들 뿐입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순종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범죄하면서 그것이 오묘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억지 부리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에 기록된 대로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행한 것입니다. 만약 그 뜻을 거스려 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범죄 행위이고, 그 책임은 모두 그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생각이나 행동들까지도 합법적으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섭리의 도구로 쓰십니다. 우리 눈에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묘한 일’에 속한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 오묘하신 뜻에 따라 인간이 품고 있는 악한 생각과 행동들을 미리 내다 보시며 그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셔서 심판의 도구로 쓰시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세상 만사는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면, 그런 의미에서 각종 범죄도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알면 알수록 유익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 때문에 분노하고 불평합니까? 손해 보았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창피당했다는 느낌 때문이고 억울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또 왜 우리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합니까? 잘 모르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위험하고 악한 일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는 단 5분 앞의 일도 내다 보지 못하니 얼마나 불안한 일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잘 알면 알수록 그 모든 분노와 불안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퍼즐 조각 맞추듯 깊으신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머리카락 하나 빠지는 것도 우연이나 어떤 운명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사의 제 1원인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범사를 합력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익하게 해주시고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롬8:28).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이 다 자기에게 복이 되고 유익이 될 것이라고 믿어도 됩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그 중 단 하나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셋째, 인간과 그리고 모든 자연의 일들을 마음대로 작정하시고 제재하시고 선택하시는 분이 바로 그렇게 특별히 교회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이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시편55:22)"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거듭 확인시켜 주시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이사야49:15,25)“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25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용하는지 우리에게 충분히 증거해줍니다(왕상22:22;12:10,15; 삼하17:7,14; 호2:21,22). 그래서 하나님의 그런 섭리를 알았던 요셉은 자기의 역경을 넉넉히 견디어 내고 그 억울함을 온유와 용서로 풀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45:7,8; 50:20). 고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욥도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기 때문에 갈대아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을 갈지 않고,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노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다 시므이의 저주를 받은 다윗도 똑같은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하신 것이니 그로 저주하게 내버려 두라.”(삼하16:11)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혹시 어떤 해를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조급해 하거나 분노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 보았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원치 않는 나쁜 일을 당했을 때에는 깨달을 것을 깨닫고, 회개할 것은 회개한 다음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면 되는 것입니다(시23:4; 27:1;56:4).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섭리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제 2원인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좋은 일을 만났을 때 우선 그 일의 원작자이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 일의 사역자로 쓰임 받은 사람에 대해서도 존경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니다. 이 말은 곧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돕는 사람들에 대해 그것을 신뢰하거나 반대로 아무도 없다고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도 됩니다. 가끔 성경에 나오는 몇가지 표현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신다거나(창6:6; 삼상15:11; 렘18:8), 뜻을 돌이켜 중단하신다(욘3:4,10; 사38:1,5)는 표현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는 결코 후회나 중단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도중에 바꾸거나 후회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삼상15:29; 민23:19; 사14:27). 성경에 그런 표현을 쓰신 것은 우리의 수준에 맞추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표현은 하나님의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다거나 도중에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기에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컨데, 요나가 니느웨 성에 회개를 선포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성이 왕으로부터 짐승까지도 다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십니다.(요나3:10) 이것이 우리 눈에는 그것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만, 사실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구원해 주시려고 요나를 보내신 것이지요.(욘4:11,창20:3,7)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의 마지막 퍼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만사와 내 모든 삶을 주물러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보고 살면 인생 자체가 행복입니다. 만약 이런 지식이 없다면 우리의 하루 하루 삶이 얼마나 억울하고 불안하고 원망스럽고 화가 나겠습니까? 우리 주변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죽음과 우리 사이가 한 뼘도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은 인생 최대의 행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면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이고, 십자가를 통해 삶을 보는 눈이 바뀌고 생각하는 머리가 바뀌고 느끼는 마음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면 역경도 감사, 실패도 감사,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십자가 핀셑을 쥐고 세상 만사 퍼즐을 맞춰 오묘하신 뜻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우리 삶을 맡겨 늘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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