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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1부 18장 : 토기장이 | 임병욱 목사 | 2024-1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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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9:20-21절 개역개정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오늘은 기독교강요 1부 18장입니다. 1부의 마지막 장이지요. 토기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공부하는 세 시간 중 마지막 시간입니다. 첫째, 보이지 않는 손, 둘째, 그림 퍼즐, 그리고 오늘은 토기장이입니다. 매 시간 마다 특징이 있었지요? 첫째, 보이지 않는 손에서는 세상 만사에 ‘우연’과 ‘운명’이란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별들과 산과 길가의 꽃들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매일 매일 보존하시고 키우시고 다스리시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역사와 생활도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고 보존하고 다스리십니다. 살다 보면 대부분의 일들이 우리에겐 다 우연처럼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우연은 세상 만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그림 퍼즐입니다. 퍼즐 조각의 그림을 맞추듯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세상 역사와 우리의 모든 삶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맞추어 나가면서 하나님이 만드시려는 큰 그림을 완성해 가고 계십니다. 그 그림의 초점은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의 유익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 시간, 토기장이입니다. 토기장이는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지요. 흙 한덩어리를 손으로 빚어 그릇을 만듭니다. 손이 가는대로 그릇 모양이 달라집니다. 길쭉하고 둥글게, 납작하고 높게, 두껍고 얇게 화분도 만들고, 장독도 만들고, 찻 잔도 만들고, 밥 그릇도 만들고, 국 그릇도 만들고, 개 밥그릇도 만들고 요강도 만듭니다. 어떤 그릇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오직 토기장이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시고, 우리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마음대로 인도하신다면, 그렇다면, 악인들, 악당들이 악을 행할 때 그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 하신 것이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만약에 정말 그것도 하나님이 시킨 것이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신 것이니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한다고 말입니다. 끔찍한 죄를 지은 악당들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이용하신 것이니까 죄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섭리를 말 할 때 토기장이 보다 더 좋은 비유는 없습니다. (이사야29:16)“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이사야 64:8)“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로마서 9: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하나님은 오직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의인과 악인을 내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생각과 행위도 홀로 주장하십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갖고 마음대로 하듯 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그러지요. 오늘 공부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할 때 논란이 되는 두 가지 문제를 배워보려는 것입니다. 첫째는 악인이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은 그 악에 얼마나 관여하시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또 그것에 어떻게 관계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질문으로 시작해 봅니다. 욥기서 1장은 욥의 고난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충동질해서 죄를 짓도록 역사하지요. 사탄이 스바와 갈대아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욥의 소유물을 칩니다. 또 사탄이 바람과 불을 끌어다가 욥의 가족과 가축을 공격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그 일에 얼마나, 또 어떻게 관여하셨을까요? 또, 열왕기서에 보면 사탄이 아합왕을 속이기 위하여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 하는 영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사탄이 들어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무리들에게 넘겨 줍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자기 아비의 후궁들을 대낮에 왕궁 위에서 욕 보입니다. 이 모든 사건에 하나님은 얼마나, 또 어떻게 관계 하셨을까요? 대답하기가 곤란하지요?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이 작정하셨고 또 행하신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께 죄를 돌리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하나님은 구경만 하셨다고 하면 하나님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 같지요. 이런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궁색한 답변이 바로 ‘허용하셨다.’라는 말입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사탄의 소원대로 잠시 악을 허용하신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이 마지 못해 사람들의 악행을 허용하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조정하신다는 점도 만족시키고, 또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계획하거나 시행하지 않는 분이라는 점도 만족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속임수 입니다. 절대 믿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일 중 그 어느 것도 ‘단순히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 없이 오직 자기 뜻대로 ‘작정’하시고 ‘시행’하십니다(시115:3). 욥을 공격한 사탄의 역사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로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욥1:21)는 욥의 고백은 꼭 맞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합 왕을 미혹 시키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신 것입니다(왕상22:20-22). 사탄의 충동질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도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이었습니다. (행전4:27-28)“27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된’것이었습니다(행2:23; 3:18). 즉, 예수님이 그렇게 배반 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임 당하시는 것은 이미 수 백년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지도록 사탄의 악심과 가룟 유다를 비롯한 대제사장, 바리세인들, 헤롯 당원들 등 사탄의 종들의 더러운 야망과 욕심을 이용하시어 그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근친상간으로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악도 하나님이 이미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신대로 한 것입니다(삼하12:12).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라든 그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에 따라 온다는 것을 성경은 지칠 줄 모르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속에 ‘단순한 허용’이라는 괄호를 은근히 집어 넣으려는 것은 지독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세상 모든 사건 모든 일은 그의 손에 들린 토기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악을 행할 때 그 속에서 어떻게 관계 하실까요? 사람이 사탄의 충돌질로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 속에서 어떻게 관계 하실까요? 이미 앞에서 ‘단순한 허용’은 아니라고 못 박아 두었습니다. 물론 어떤 악한 행동 하나 속에 하나님과 사탄과 사람이 각각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 것은 제2부 4장, ‘자유의지’를 공부하는 곳에 가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만, 여기서는 우선 간략하지만 확실히 해 둘 것은 하나님이 선 악간의 ‘모든 것을 작정하고 충동하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두어 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원래 죄인인 인간은 생긴대로 열심히 아주 즐겁게 악을 행하게 되지요.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은혜’를 빼앗으시면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겔7:26), 하나님이 만민의 두목들의 총명을 빼앗으시면그들은 길 없는 거친 들로 유리하게(욥12:24; 시107:40)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인간의 악한 마음을 더 악하게 하시고 더 어둡게 하시는 것입니다(사29:14; 롬1:28;출14:17). 하나님은 직접 사탄을 부리어 사람의 마음을 더 어둡게 하고 더 굳게 하십니다(출4:21; 수11:20; 신2:30; 시105:25;사10:6; 삼상16:14). 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고 성경은 말하는데(고후4:4), 그 사탄의 유혹하는 역사는 바로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살후2:11)“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곧 사탄이든 죄인이든 그들은 원래 생긴대로 악을 행하기를 기뻐하지만 하나님은 작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직접 개입하사 그것을 막기도 하고, 허락하기도 하고, 때로는 더 악하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악을 행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어쩔 수 없어 ‘단순히 허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그 모든 악을 심판의 도구로 활용하시기도 하시고, 또 그것을 바꾸어 선을 이루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선한 그릇이든 악한 그릇이든 다 그의 손에 들린 토기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또 하나님을 흠집내고 싶어 하는 자들은 하나님은 줏대도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때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지요. 이는 곧 모든 일에 은혜를 거두시기도 하시고, 직접 개입하서 적극적으로 선이나 악을 행하게도 하실 때, 하나님의 의지는 때에 따라 변하거나 아니면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가 적절하게 행하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문제로 또 고민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마치 선한 의지를 포기하기도 하시고, 도중에 바꾸기도 하시는 것처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왜 동시에 악을 원하시는가? 욥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욥을 그렇게 또 공격하셨는가? 예수님을 죽였던 자들에게 진노하셨던 하나님이 왜 또 예수님의 죽음을 원하셨는가? 이스라엘의 번영을 원하셨던 하나님이 왜 동시에 이스라엘을 둘로 찢으시기를 원하셨는가?(왕상11:23; 12:15)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대답을 찾지 못하고 헤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는 모순이 있다느니 변화가 있다느니 여러 개가 있다느니 하면서 횡설수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단일하십니다. 다만 연약한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일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충동질 때문에 즉석에서 욥에게 시련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은 처음부터 작정된 하나님의 의로우신 채찍이었습니다. 욥도 믿음으로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이지요(욥1:21;42:1-5).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하나님이 처음부터 작정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구원이 어디서 오는 것이란 말입니까? 사탄에게서 옵니까? 아니면 가룟 유다에게서 옵니까? 그래서 누가는 기록하기를 헤롯과 빌라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과 계획대로 이루시려고 작정하신 바를 행하기 위하여 공모하였다고 했습니다(행4:28). 하나님은 평안도 짓고 환난도 짓습니다(사45:7). 세상의 어떤 재앙도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시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암3:6)“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선하고 악한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단일하신 뜻 안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거기엔 모순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다만 시력이 약한 우리들에게 그렇게 보일 뿐이지요. 하나님은 토기장이신데 완벽한 토기장이십니다. 처음 계획한대로 그대로 그릇들을 지어내시고 도중에 바꾸거나 실패하여 포기하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완벽한 토기장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불경건한 자들의 악한 행위를 사용하실 때에도 전혀 비난 받으실 일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진 토기장이시라니까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오해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악도 하나님이 만드신다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죄를 짓는 사람들의 책임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오해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교훈을 혼동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둘의 차이점을 수도 없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설명해 봅니다. 다윗의 압살롬이 아버지의 후궁들을 더럽힙니다(삼하16:22). 물론 하나님이 이 일을 명하신 것입니다(삼하12:11,12). 하나님의 뜻이고 작정이지요. 그러나 압살롬이 붙잡고 따라야 했던 것은 그 ‘오묘하신 뜻’이 아니라 분명하게 ‘나타내신 뜻’ 즉 근친상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교훈과 계명입니다(레20:11,12). 이 사건을 놓고 다윗은 그것이 곧 자신의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왜요? 그는 하나님의 교훈을 범한 자신의 죄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삼하16:10,11).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채찍질 하시기 위해 압살롬에게서 은혜를 거두시고, 그의 욕망을 부추기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압살롬은 자신의 정욕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교훈을 파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인 근친상간을 범했으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훈을 범한 압살롬은 심판을 받아야 했고,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 다윗을 심판하기 위해 쓰시는 징계의 도구였습니다. 이처럼 죄인과 악인의 한가지 행동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인간의 정욕과 죄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똑같은 행동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과 죄인이 행동하는 근거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뜻에 근거해서 행동하시지만, 죄인은 자기의 정욕을 근거해서 행동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행동을 ‘어떤 생각으로 했느냐’가 더 중요하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하나님도 원하신 일이고 헤롯과 대제사장들도 원했던 일 입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근거들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뜻을 이루기시 위한 것이고, 헤롯과 그 일당은 악함으로 행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행악에서건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시고 악을 행한 인간은 항상 악합니다. 완벽한 토기장이께서는 나쁜 흙이든 좋은 흙이든 가리지 않고 다 사용하여 원래 원하셨던 대로 최상의 그릇을 만드시는 분이라고나 할까요? 원래 질이 나쁜 흙이 자기의 악함을 토기장이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완벽한 토기장이께서는 그런 악한 흙도 사용하셔서 최상품의 그릇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꼭 기억해두십시오. 하나님은 책상 펴고 앉으셔서 사탄과 죄인들이 요구하는 악행들을 하나씩 검토하고 어느 것은 허락하시고 어느 것은 허락하지 않으시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모든 것을 뜻대로 작정하시고, 작정한 대로 이루어 지도록 사탄과 악한 자들까지도 이용하셔서,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같은 한 사건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고, 죄인들은 자기의 악한 뜻을 이루는 것이지요. 죄인들은 그저 자기의 죄악이 충동질 하는 대로 죄를 지을 뿐입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번 정하신 뜻은 바꾸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토기장이십니다. 그는 항상 자기의 기쁘시고 선하신 뜻대로 최상품 토기를 만드십니다. 세상 만사를 또 그렇게 작정하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게 되고 우리의 행복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항상 기억하십시오. 보이지 않는 손, 그림 퍼즐, 그리고 토기장이입니다. 그러므로 전 우주와 사시사철과 인간의 역사와 우리 개개인의 날마다의 생활은 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무대입니다. 이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을 선하고 복되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는 오직 분명히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 바로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무대에서 가룟 유다처럼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인생을 맡기고 모두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에스더처럼, 바울처럼, 구레뇨 시몬처럼 쓰임받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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