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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2부 1장 : 바이러스 | 임병욱 목사 | 2024-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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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5:12절 개역개정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기독교강요 1부를 마치고, 오늘부터는 기독교강요 2부로 넘어갑니다. 기독교강요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종교개혁의 리더인 존 칼빈이란 프랑스 신학자가 1536년, 26세에 쓴 책으로, 그 뒤로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계속 보충해서 완성시킨 개신교 신학의 챔피언입니다. 기독교강요는 부패한 로마 카톨릭의 교리로 부터 신자들을 보호하고 성경을 제대로 보게 하기 위해 성경의 핵심 교리를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강요라는 교리의 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면 성경의 핵심 구조와 얼개가 환하게 보여 경건생활에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강요는 모두 4부 80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관한 내용이고, 제2부는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섭리하시고 구원하시는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이 그 모든 사랑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2부 1장 원죄론입니다. 아담의 타락과 반역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아담 이후로 출생하는 모든 인류를 죄에 감염시켰고, 그로 인해 인간의 원래 상태는 부패하였다는 내용이지요. 그것을 오늘은 바이러스라는 제목을 배워봅니다. 바이러스(virus)는 라틴어로 ‘독(毒)’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과성병원체를 말 합니다. 바이러스는 숙주(바이러스의 기생 대상이 되는 생물)의 핵 속에 들어가 그 본래의 대사 매커니즘을 파괴하고, 그 속에서 다량의 바이러스를 합성해는 미생물체입니다.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질병은 상당히 많습니다. 감기를 비롯해서 비염, 폐렴, 소아미비, 수막염, 뇌염, 광견병, 결막염, 설사증, 홍역, 풍진 등등 우리 귀에 익숙한 것이 대부분이지요.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알려진 미생물체에 의해 인류는 재앙 수준의 큰 고통을 당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 뚜렷한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또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도 유행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얼굴 없는 어떤 악당들이 만들어낸 ‘파괴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다른 파일이나 프로그램 속에 몰래 끼어 들어가 멀쩡한 컴퓨터의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망가뜨리는 놈들이지요. 이런 놈들에게 걸리면 엄청난 손해를 봐야만 합니다. 죄가 우리 사람에게 역사하는 모양은 바이러스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 침투하여 그 본성을 변질시켜 자기 닮은 성품으로 만들고, 또 각종 질병과도 같은 수많은 죄악들을 생산해 내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모르면 사람도 모릅니다. 이번 주부터 죄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죄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인간 자신에 대한 다음 두 가지 지식을 모두 가져야 합니다. 하나는 창조 되었을 때 인간이 받았던 우수한 성품에 대해서고 다음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부패한 인간의 성품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의 마음 속에 선에 대한 열망과 영생에 대한 소원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잃었고 오히려 말할 수 없이 추악하고 패역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사람들은 본래 미친듯이 자기 도취에 빠지며 맹목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려는 뻔뻔스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골수에 박힌 자기 자존심을 만족시켜 주는 매혹적인 거짓말들을 악착같이 기뻐하고 사랑합니다. 모든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리려는 듯한, 아주 겸손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도 그 공로를 슬쩍 나누어 갖고 결국에는 자신이 그 자랑과 신뢰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인간성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이 떠돌아 다닙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아무리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믿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자기도취일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박수치며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철처히 파괴하고 비참한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아무리 달콤하더라도 절대 믿으면 안 되는 말들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다음 두 가지 지식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첫째로, 타락 이전의 탁월한 상태로서의 인간에 대한 지식인데 이 때 인간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창조된 것입니다. 둘째로, 타락 이후의 비참한 상태로서의 인간에 대한 지식으로 이 때의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아무 소원이나 아무 재능도 없는 상태, 이른바 무(無)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째 지식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둘째 지식은 우리에게 그 인생의 목적을 실천하려는 자기의 능력에 절대 한계가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 절대 한계란 아담의 죄로 인해 창조 될 때 가졌던 그 첫 성품을 잃고 오로지 파멸 당함만을 갖게 된 인간의 부패함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3장은 아담의 첫 범죄를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왜 아담의 타락을 막지 않으셨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항의는 ‘눈 먼 호기심’일뿐 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똥 피하듯 피하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룰 것입니다만 그것은 예정의 비밀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은 왜 그 뼈 아픈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어거스틴은 그 범죄의 원인을 교만으로 보았습니다. 아담이 자기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정욕으로 인해 교만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죄의 뿌리는 좀 더 깊습니다. 성경은 불순종이 그 타락의 시초였다고 지적합니다(롬5:19). 그러면 불순종의 원인은 또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자 마자 그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었습니다. 경외심을 잃자마자 그는 거짓에 빠졌습니다. 거짓에 빠지자 마자 그는 악한 야망이 생겼고, 그 야망은 곧 반역과 불순종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불충함이 불순종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정욕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굴레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생각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최고로 행복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두 가지 생각으로 무장할 때 우리는 우리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죄는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첫 성품에 침투하여 역사했습니다. 인간의 탁월했던 첫 성품을 변질시켰고, 부패시켰습니다. 인간을 아름답고 탁월하게 장식했던 지혜와 거룩과 힘과 진실과 공의는 파괴되고, 대신 그 부패한 본성 안에서는 무지와 무기력과 불결과 허영과 불의 등 가장 추악한 악과 질병들이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이 첫번 죄를 교부들은 ‘원죄’라고 불렀지요. ‘죄’라는 말을 간단히 설명하면,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꽂혀 살던 인간의 선하고 순수했던 그 본래의 본성을 다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죄는 아담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에게 그대로 유전되었습니다(시51:5).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철저하게 비뜰어지고 어두워지고 부패한 성품을 그대로 물려 받아 태어나는 것이지요. 물론 펠라기우스(Pelagius)같은 사람은 그 말에 펄쩍 뛰며 반대했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너무 비상식적인 말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아담의 죄가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분명히 증거해주는 성경 구절은 차고도 넘치니다(롬5:12; 엡2:3; 요3:6). 그러자 그는 그 전달이 번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방에 의한 것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렇다면 모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한마디로 아무리 타락했어도 모든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여전히 도덕적 능력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펠라기우스 이단설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약에 아담의 죄가 모방에 의해서 전파되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도 모방에 의해 누리는 혜택이란 말입니까? 성경은 또렷한 표현으로 말씀해줍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이 우리에게 회복되었느니라(롬5:17).’ 죄와 죽음은 아담을 통해서 인류에게 잠입했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치료되며, 의와 생명은 아담 때문에 잃어버렸다가 그리스도 때문에 회복된다는 말씀입니다(고전15:22). 이와 같이 썩은 뿌리에서 썩은 가지가 나오듯 아담에게서 시작한 부패는 그의 후손들에게 계속 전달되어 끊임없이 흘러 간 것입니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언약적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아담의 죄책과 죄의 오염은 그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책과 동시에 우리들의 타고난 부패는 우리의 죄책이 됩니다. 그러나 죄의 전염은 인간의 육이나 영혼의 어떤 본질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에서 온 것입니다. 아담이 자신 뿐 아니라 모든 후손들을 위해 받았던 첫 성품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그렇게 받았다가 또한 잃어 버린 것이지요. 그렇다면 영적으로 거듭난 부모가 낳은 자녀는 어떤 상태로 나올까요? 안타깝지만 당연히 죄인으로 납니다. 자녀는 부모의 영적 중생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육적 번식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담의 죄는 아담의 본성이 아니라 본성을 부패시켰으며, 인간성 전체를 파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육적 번식 방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후손들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는 인간의 본성이 유전적으로 타락했고 부패했다는 뜻으로 인간 영혼의 모든 부분이 그렇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만들었고, 성경에서 ‘육체의 일’(갈5:19)이라고 한 행위들을 하게 만듭니다. 바울이 자주 ‘죄’라고 부른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지요. 예를 들면, 간음, 우상 숭배, 도둑질, 미움, 살인, 교만, 열락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죄의 열매’, ‘죄들’이라고도 부르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의 본성은 철저히 타락하고 부패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정죄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이 부패한 본성은 또 다시 끓어 넘치는 용광로 불똥처럼 끊임없이 다른 죄악들을 생산해 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죄는 의의 결핍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악을 생산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에 대해서는 무능력 하고 악에 대해서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지요. 원죄를 육욕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우리 인간성 전체를 변질시켰습니다. 어느 한 부분에만 침투해서 역사한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성 전체를 변질시키고 마비시키고 더럽혔습니다. 로마서 3장은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1-20절). 따라서 바울은 우리의 본성 중 악한 어느 부분만 제거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완전히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고 요구합니다(엡4:23). 인간은 마치 폭우를 만난 사람처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죄에 압도되어 죄를 면한 부분이 단 한 곳도 없으며, 사람에게서 시작하는 모든 것은 다 죄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지요(롬8:6,7). 아무튼 죄라는 바이러스에 침투 당한 인간은 ‘선천적’으로 부패한 상태로 납니다(엡2:3). 현대에 앓고 있는 질병 중 치료가 쉽지 않은 질병이 있습니다. 에이즈이죠. 에이즈는 후천성면역결피증입니다. 곧 면역력이 사라져 각종 바이러스나 병원균에 의해 수많을 질병을 앓다고 죽는 병이지요. 아담의 죄로 인해 ‘선천적’으로 부패한 죄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증세가 나타납니다. 첫째, 선천성믿음결핍증입니다. 죄는 선천성, 곧 세상에 날 때부터 믿음결핍증을 앓게 합니다. 도무지 믿어야 할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죄에 감염되어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선천성선행결핍증입니다. 도무지 선한 것을 원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가끔 선을 행하고 양심대로 살고 법을 지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특별히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모든 사람에게 해와 비를 주시듯, 하나님은 그렇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십니다. 왜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은 곧 지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죄인들은 도무지 선을 원하지도 행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미친듯이 악을 꿈꾸고 악을 행합니다. 셋째 선천성공포수치증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 공포와 수치, 부끄러움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평생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마치 우물 저 깊은 곳에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가 틈만 나면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하듯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떠난 것과 죽음에서 오는 두려움이고, 죄 때문에 생기는 부끄러움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그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피해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자연적 출생 방법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그래서 타락 이전의 탁월했던 성품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전혀 다른 추하고 악한 성품으로 변해 각종 죄악의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는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되었고, 그 죄는 인간성 전체를 부패시키고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선을 행할 능력은 하나도 없어지고 악을 행할 능력은 엄청나게 생긴 것이지요. 이 악질 바이러스를 물리칠 약은 성령이란 의원께서 처방하시는 예수 보혈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저와 여러분의 그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속에 믿음을 심어 주십니다. 믿음은 죄를 치료하는 유일한 약으로 이 믿음을 선물로 받으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 죄를 없애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내게 최고로 안전하고 행복한 길임을 믿게 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나를 최고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하는 길임을 믿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즐거워 하고 예배가 소중해지고 기뻐집니다. 이런 일이 내게 생기면 내 속에 깊이 박혀 있던 죄의 뿌리가 뽑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죄의 바이러스를 죽인 것입니다. 아직 죄의 증세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결국 죄와 죽음의 병에서 완전히 치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을 날마다 먹고 마셔서 죄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그 후유증까지 완전히 이겨내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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